새로이 인계 받아 익숙지 않은 일들이, 한꺼번에 홍수처럼 밀어닥친 나날들이었다. 기존에 팔로우하고 있던 일은 답답할만치 지지부진하다가 공교롭게도 왜 지금 갑자기 속도를 내는 건지. 불이 이글거리는 자갈 위를 지나야하는데 아직 노하우도 네트워크도 변변치 않아 그저 발이 녹기 직전 다른 발을 간신히 내미는 식으로 바삐 일했다. 보이지 않는 비명을 지르면서, 가끔씩은 나도 모르게 '침착해. 침착해.'를 입 밖으로 내면서까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시간, 혼자 지하 식당에서 Knappily 읽으면서 밥을 빠르게 먹고 카페에 가 공부를 한다거나 태블릿을 챙겨가 글을 쓴다거나 서점에 가 책을 산다거나 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나에게 그 시간은 정말이지 꼭 필요한 시간이다. 밥을 먹어야 신체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것처럼, 일주일에 한두번은 점심을 그렇게 보내야만 나라는 정신은 고장 없이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 금요일엔 서점에서 한꺼번에 책을 5권이나 샀다.-
그치만 난 지금 행복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이면 자꾸만 1년 전을 떠올린다. 일을 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어렵사리 꺼냈을 때 조급하단 답변에 좌절했던 그 때를. 그리고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를 되새긴다. 그리고 1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보면서, 오늘의 이 한시한때가 또 어떤 의미로 변해 의미를 찾게 될 지 점쳐본다.
이걸 왜 내가 하고 있는거지 볼멘 소리를 속으로 삼키면서도 기꺼운 손동작으로 해내고 일일이 기록해뒀던 일들이 지금에서야 쓰임새를 찾는 것이 기특하고도 뿌듯하다. 이런 경험이 많아질수록, 어떤 일이든지간에 힘주어 집중하고 한번 더 눈여겨보게 된다. 결국은 다 내게 돌아오리란 걸 알기에, 못난 불평은 잡아누르고 그걸 딛고 서서 다시 또 가파른 벽을 기어오른다.
돌틈에 난 풀과 이마를 스치는 실바람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더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