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Movie

큐어

샤니샤니 2017. 6. 2. 08:32

◎ 작성일 : 2016년 1월 28일

 나는 갑작스러운 소리와 화면으로 놀래키는 연출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에, 주온 류의 공포 영화를 전혀 보지 않는다. 하지만 다크니스(2002)처럼 으스스하고 미스터리한 건 나름 좋아하는데, 이 큐어는 그런 느낌의 공포감을 아주 탁월하게 조성한다. 영화를 보면서 화들짝 놀라거나 얼굴을 일그러뜨릴 일은 없지만,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선 온 신경이 곤두서있는 상태로 뚫어져라 볼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죄다 똑같이 X자로 목을 잘랐기 때문에? 아니, 시뻘건 피와 벌어진 살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동료를, 낯선 남자를 죽일 수 있는 '이유'가 존재했다는 그 사실 자체. 어쩌면 매스너가 없었다면 그들은 일평생을 살인이라는 단어와는 멀찍이 떨어진 채로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가장 소름 끼치는 부분이다. 그러한 '이유'를 품은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평화로운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음이. 아주 일상적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렁이는 불꽃과 번지는 물방울들 같이 아주 사소한 기폭제로도 거침없이 산 사람의 목을 그어 피를 솟게 할 수 있는 그런 '이유'를 품은 채로도. 

 이 영화에 이입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몹시 철이 없어서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태평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초반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감독의 연출력 같이 누구나 감탄할 수 있는 부분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나는 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하단 말을 들을 땐 차갑게 메마른 내 가슴을 보며 괜스레 쓴 웃음을 짓게 되고, 남 일에 신경 끄자 다짐해봐도 당장 내 앞 사람이 넘어지기라도 할라치면 붙잡아주려 생각보다도 손을 먼저 뻗는 나 자신에 결국 별 수 없다 포기하게 된다. 나는 나의 성격이며 기질이며 나에 대해 뭐든지간에 명확하게 규정 짓는 일을 아주 어릴 적부터 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이 나이 되도록 하지 못하고 있다. 

 중학생 때 엄마 앞에서 내 손등을 가급적 숨기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하얗고 팽팽하고 보드라운 손등이 엄마의 어둡고 쭈글쭈글하고 거친 손등과 같이 놓였을 때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할까 상상해보니 서글픈 마음이 먼저 들길래 엄마를 위해 그랬었다. 그러나 누가 효녀라고 칭찬하면 반발심부터 드는 건 무슨 심보일까? 아니, 난 효녀가 아닌걸. 내가 효녀가 아닌 이유를 100가지 쯤은 댈 수 있을걸? 그러면 나는 나 스스로 위선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우울해진다. 효녀가 아닌데 효녀라는 말을 듣고도 뻔뻔스럽게 잠자코 있는 위선자가.

 그러나 이 영화 속에는 온화하기 그지 없는 교사 남편도, 똑부러지고 냉철한 의사 언니도, 푸근하고 사람 좋은 경찰 아저씨도, 끝까지 아니라고 발버둥치던 형사까지도 모두 다 모두 다 위선자다. 어처구니 없게도 나는 그 사실에, 나 역시 그저 숱한 사람들이 겪는 평범한 혼란을 겪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나 편안한 안도감을 얻게 된다.

 사족이지만, 나는 내가 무서웠던 때가 한 번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질렀고(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나도 모르게'라는 표현이 거짓이 아니라 실제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주 평온하면서도 그 엉터리 같은 자기 확신으로 충만한 목소리가 나를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분명 두꺼운 벽이 사이에 있었음에도 바로 앞에 맞닥뜨린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 느낌으로 인해 내 몸은 벌벌 떨렸고 나는 내가 떨고 있다는 걸 그 사람이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떨렸다. 나는 그 때 남자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고 때려눕혀 제압한 채로 욕을 퍼부어 내 앞에서 빌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단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정말로 만화처럼 머릿 속에 칼이 떠올랐다. 계속. 계속. 떨치려 해도 계속. 그리고 나는 그런 내가 벽 너머 그 사람보다도 더 무서워졌다. 가능할 것도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너무 무서워서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적어도 상상 속에서 자살한 형사 아내의 모습은 최소한 온전하긴 했다. 그러나 영상 막바지, 죽은 채로 휠체어를 타고 오는 그 모습은 괴기스럽기 짝이 없다. 상관 없다. 아내가 너무나 지겨워서 죽여버리고 싶은 상태에선 징그러운 것이고 혐오스러운 것이고 다 상관없이 자기 자신이 가장 끔찍한 것이므로 그 어떤 것에도 무감각할 수 있어진다. 그 사람을 죽여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 적어도 그 순간엔 그 사람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분노범죄니 뭐니 해서 온갖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횡행하는 요즘, 도처에 기폭제로 쓸 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는 낯선 이들이, 매일 나와 시덥잖은 농담을 나누며 함께 웃음 짓는 이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품고 있는 '이유'는 무얼까 부질없는 궁금증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