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이라고 해야 한다. 혹자는 이걸 저널리즘이라 비판했다고 하던데, 수시로 고개를 낮추고 인간이기에 불가피한 편향성을 인정하며 독자에게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읽으라 주지시키는 작가에게 너무 박한 것이 아닌지. 혹은 아무런 여과도 없이 책의 내용을 받아들일 거라고 독자들의 수준을 너무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스페인 내전에 대해, 아니 사실은 스페인 자체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다 읽고 나니 나는 스페인이란 나라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고, 또 놀랍게도 스탈린 주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조지 오웰은 스페인에서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기꺼이 의용군에 합류해 참전한다. 파시스트에 대항해 참호전을 벌이고,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휘말리기도 하고, 목에 총상을 입기도 하고, 체포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이 책은, 포움에 대한 변호를 위해, 아니, 무고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 당하는 데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쓰였다.
흥미로운 점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시기에 사회주의의 물결이 만연하였을 뿐 아니라 이미 무정부 주의, 스탈린 주의, 트로츠키 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단체들이 있었단 점이다. 읽으면서 우리 나라 근현대사를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그들은 전쟁과 혁명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파시즘을 배격하는 자세만은 모두 같았다. 그 차이점과 공통점이 바로 비극을 만들었다. 상대를 파시스트와 내통했다고 모함하는 것은 순식간에 폭력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 중 가장 유익한 것을 뽑자면, 왜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론을 사람들이 싫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 점이다. 마르크스의 생각과 일치하기도 하고 또 매우 합리적으로 보이는 영구 혁명론은, 소련의 존망에 대한 과도한 낙관을 기저에 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혁명 초기 사회는 필수적으로 진통을 겪게 되고, 그런 사회에는 파시즘이 쉽게 고일 수 있다. 때문에 소련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던 프랑스의 공산주의자들은 가능한한 프랑스가 더욱 고도로 자본주의화 되도록 애쓰고 최대한 혁명의 시기를 늦추려 했다고 한다. 프랑스의 군사력 증진 내지는 유지를 위하여. 당시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해방이 아닌 소련의 안위였던 것이다! 하물며 소련에게 무기를 공급받던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잘 무장된 것이었던 당시 스페인에서라야!
조지 오웰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 내전 참전 경험 이후 인간의 품위에 대해 더욱 믿게 됐다고 말한다. 나 역시 그렇게 느낀다.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대로 살아갔던 인간들은 그 말로가 어찌 되었든 간에 너무나 인간적이라 아름답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작은 이야기, 소나무가 너무 멋드러지게 휘어져있어 아 저기에 목매달아 죽고싶다고 느끼는 그런 류의 아름다움이다. 아름답다고만 하고 마무리할 수는, 해서는 안 된다. 일신의 영달만을 위한 치졸한 분투에도 보이지 않는 피해자가 생기는 판국에, 더 나은 사회 체제에 관한 이상은 필연적으로 많은 이들의 침묵 혹은 죽음을 필요로 한다. 결국은 그 생각이 바람직한가 아닌가 하는 가치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나처럼 무지한 자는 이 대목에서 서둘러 글을 맺는 편이 오히려 바람직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