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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서 쓰는 블로그
유정 - 이광수 본문
◎ 작성일 : 2015년 7월 24일
애석하게도 이 '유정'이 갖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문학에서의 의의를 논할 만큼의 식견을 가지지는 못했으나, 작가의 탁월한 재능에 마음껏 찬탄하고 흠뻑 취할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어 다행이다. 음, 그리고 잔뜩 힘주진 않더라도 빠뜨리진 말아야 할 것이, 친일 작가라는 점.
구성은 믿음직한 N형에게 부쳐진 최 석의 편지가 쭉 나오다가 끄트머리 조금은 N형이 직접 서술을 한다. 액자 속은 서간체로 최 석의 1인칭 시점, 액자 밖은 N형의 1인칭 시점.
교장을 하고 있는 최 석은 오갈 곳 없는 가여운 정임이란 아이를 맡아 길러주는데, 어느 모로 보나 본 딸인 순임이보다도 탁월했던 탓에 본 딸인 순임이와 부인은 그런 정임을 질투하고 최 석을 원망한다. 이런 와중 몸이 약한 정임이의 상태가 나빠지고, 설상가상으로 '풋솜 같은' 어린 희를 돌봐야하는 부인 역시 폐병에 걸린 듯 하여 최 석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정임을 일본으로 보낸다.
그런데 정임의 병세가 몹시 나쁘다는 소식에 급히 일본에 가 정임을 돌봐주곤 돌아오니, 부인은 정임이 최 석의 아기를 가져 애를 떼느라 병원 신세를 졌던 것이 아니냐 노발대발하는 것이었다. 그 증거랍시고 내놓은 것이, 최 석을 향한 사모의 정을 절절히 적어놓은 정임의 일기장이었다. 일기장을 읽고는 최 석 역시 몹시 놀랐으나, 도무지 최 석의 말을 들으려고조차 않는 부인과 자길 두고 수군거리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변명의 의지를 꺾어버리곤 아예 조선 땅을 떠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가 정임을 만나보았더니, 정임은 죄책감에 눈물 지으며 함께 떠나자고 청하였고 나는 그런 정임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꼈으나 아버지와 딸로 살아온 관계 안에서 자신을 가까스로 억누른다. 그리곤 아라사로 떠나 자신의 도덕과 정임에의 연정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아주 죽어버려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숲 속에 들어가버리기로 했다고, 그렇게 편지를 부쳤던 것이다.
편지를 읽은 N형은 오해를 풀기 위해, 최 석이 정임이와 함께 있는 줄로만 아는 부인에게 가서 해명을 하고, 마침 정임이도 일본에서 서울로 와 최 석을 찾겠다고 말한다. 순임이도 이제는 꽤 자라, 아버지와 정임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둘이 같이 아라사로 가자 한다. 그러나 정임은 건강이 악화되어 중간에 요양을 하게 되어 순임이만이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곁에서 돌본다. N형은 허겁지겁 최 석을 찾아가봤지만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 석은 자신이 아라사로 와서 겪은 일을 기록한 종이 뭉치를 N형에게 부탁하고, 열이 내린 정임이 당도하기 겨우 1시간 전에 숨을 거둔다.
요즘 세상에 읽고 있는 나에게도 파격적인 사랑인데,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최 석과 정임의 사랑보다도 순임의 태도가 공감하기 어려웠다. 아버지와 정임의 감정을 이해하고, 심지어 감탄하기까지 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어찌 보면 순임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기보다는 최 석이라는 하나의 인간으로 상당히 객관화한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저 정도로까지 그것이 가능할까! 나는 내 나름 우리 부모님을 객관화하여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여기지만 저 정도로까지는 도저히 어려울 것 같다.
최 석이 아라사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종이 뭉치에는 자신과 마찬가지 모양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감정이 피어났던 탓에 죽음을 각오하여 아라사에 닿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최 석은 조금쯤은 정임이와 자신의 모습을 비슷하게 상상해도 보았으나, 이내 그들에게 묘한 거부감을 느끼고 만다. 하기사 일생을 참다운 교육자로 살아오며 자기의 도덕 관념에 누구보다도 투철한 자부심을 가져오던 사람이 그러한 모습에 스스럼 없을 수가 있을까. 최 석이 추운 아라사로 온 것은 바로 그러한 모습에서 스스로를 떼어놓기 위해서였으니 그들의 삶에 부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전면 부정이 아닌가. 어찌 보면 그렇기에 정임에 대한 최 석의 감정은 참으로 거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껏과 완전히 다른 삶의 소용돌이 속으로 최 석을 단번에 밀어넣어버렸으니.
내가 무척 좋아하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지바고 역시 타냐라는 배우자가 있지만, 타냐보다 라라와 더욱 절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 솔직히 말해서 22살의 박영선은 당시 책을 읽으며 조금 거부감을 느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읽다가 '라라와 지바고의 사랑을 불륜이라 말하시는 분은 분명 감정이 상당히 메마르신 분일 겁니다.'하는 구절을 읽고는 더욱 놀랐었다. 글쎄,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는 가에 따라 다른 문제일테지. 나도 이제는 꽤 머리가 굵어지고 또 사실상 결혼이란 게 그다지 먼 나이도 아닌지라, 결혼이란 것이 사랑의 결실일 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에 있어 상당히 실리있는 선택이란 점도 이해하고 있다. 하물며 간통죄도 폐지된 마당에 이런 거부감은 촌스러운 것이려나. 결혼을 해보고 나면 이런 부분에 대해 좀더 생각할 수 있는 범위나 깊이가 더해지겠지.
다만 내가 궁금한 점은, 그래도 통념상 사람들은 결혼을 성스럽게 여기고 그를 깨뜨리는 행위를 혐오하는데 어째서 이렇게 결혼이란 제도를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어쩔 줄 몰라하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해외고 국내고 명작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인가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일까? 하기야 영 모를 일은 아닌 듯도 하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 두 군데를 첨부하며 마무리하기로 한다.
- 내 아내는 내 말의 뜻과 내 생각의 뜻과를 비교하는 모양으로 한참이나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히ㅡ를 쳐들어 들여다보고, "희야, 엄마가 폐병이면 어떡하나. 엄마 병이 옮으면 어떡하나. 그렇기로 이 풋솜 같은 것을 남에게 어떻게 맡기나." 하고 흑흑 느껴 울기를 시작하오.
> 내가 그간 살아오면서 모정을 담아내는 표현들을 많이 보아왔으나 저 '풋솜 같은 것'만한 것은 없었다. 어쩜...!
- 그러나 열정의 파도가 치는 곳에 산은 움직이지 아니하오? 바위는 흔들리지 아니하오? 태산과 반석이 그 흰 불길에 타서 재가 되지는 아니하오? 인생의 모든 힘 가운데 열정보다 더 폭력적인 것이 어디 있소? 아마도 우주의 모든 힘 가운데 사람의 열정과 같이 폭력적, 불가항력적인 것은 없으리라. 뇌성, 벽력, 글쎄 그것에나 비길까. 차라리 천체와 천체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비상한 속력을 가지고 마주 달려들어서 우리의 귀로 들을 수 없는 큰 소리와 우리가 굳다고 일컫는 금강석이라도 증기를 만들고야 말 만한 열을 발하는 충돌의 순간에나 비길까. 형. 사람이라는 존재가 우주의 모든 존재 중에 가장 비상한 존재인 것 모양으로 사람의 열정의 힘은 우주의 모든 신비한 힘 가운데 가장 신비한 힘이 아니겠소? 대체 우주의 모든 힘은 그것이 아무리 큰 힘이라고 하더라도 저 자신을 깨뜨리는 것은 없소. 그렇지마는 사람이라는 존재의 열정은 능히 제 생명을 깨뜨려 가루를 만들고 제 생명을 살라서 소지를 올리지 아니하오? 여보, 대체 이에서 더 폭력이고, 신비적인 ... (후략)
> 내가 썼던 시의 마지막 연과 똑같은 내용이다. 나 역시 완전히 동의하는 내용이다. 난 인간의 이런 점을 두려워하고, 또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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